그러나 그렇다 해도,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잊을 수 없다. 예수님의 현존(고난)은, 비극과 모순을 감수하면서까지, 인간을 붙잡고 사랑애기를 들려주는 하느님 화해의지의 전부이고 그 표현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유일한 애인이다. 하느님의 소망어린 꿈이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의 말씀대로, 우리 각자는 “하느님의 그리움 자체이며 그분 사랑의 목표”이다.
성경은 하느님이 결국 인간에 대한 사랑 때문에 – 인간을 닮다 못해 – 아예 인간이 되어버렸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느님도 홀로는 너무나 외로워(롭고 서러워) 견딜 수가 없었던가 보다. 그 이겨낼 수 없는 외로움으로 인해, 하늘나라로부터 가출하여 인간에게로 뛰어오는 하느님, 사람을 보고 너무 기뻐서 흙 마당을 버선발로 딛고 달려오다, 인간 죄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시는 분, 바로 예수님이시다.
사랑에 빠져 거꾸로 되어버린 분, 이성을 잃고 하늘 집을 나오시고만 그분, 그래서 하늘나라의 탕자가 된 그분은, 다름 아닌 예수님이다. 그 길밖에는 없다고 천국을 버리고 곤욕 속에 진창이 되어, 기어코 죽고 마는, 예수님의 길은, /미칠 것 같은 사랑 때문에 빚어진 하느님의 몫(운명)이었다. 보장된 낙원을 마다하고, 어쩔 수 없이 비극 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이 되고 마는 하느님, 마침내 초라한 모습으로, 누더기도 걸치지 못한 십자가상의 아들은 하느님의 잃어버린 자신이었다.
결국 그분은 당신을 다 내어주고 마는, 그 사랑을 택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복음에서, 하인들이나 하듯이 우리 발을 씻어 주는 그런 정도가 아니라, 당신 전 존재를 우리에게 내어주셨던, 그 분의 뜨거운 사랑을, 우리는 이 성스러운 밤 깊이 묵상하고 체득해야 할 것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