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직접 체험해 보지 못한 일은 상상할 수밖에 없습니다. 체험한 사람들의 증언이 나에게 확신을 심어 줄 수는 있지만, 저마다의 기대와 상상이 다르기에 모든 체험은 나에게 언제나 특별할 수밖에 없습니다.
죽음 이후의 미지의 세상에 대한 우리의 상상도 마찬가지입니다. 부활이 없다고 믿는 사두가이 몇 사람이 엉뚱한 질문을 던졌을 때,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기준으로 하느님 나라를 이해하려는 그들의 어리석음을 탓하십니다.
부활의 세계는 서로의 인연으로 말미암아 맺고 풀리는 불교적 세계관과는 다릅니다. 부활은 차원이 다른 세상의 이야기입니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하느님을 상상할 수는 있어도 하느님을 직접 뵐 수 없는 것처럼, 우리가 부활의 세상을 상상은 할 수 있지만 실제로 어떤 것인지 직접 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느님 나라를 비유로 말씀하셨지, 그 나라의 실체를 인간에게 직접 보여 주신 적은 없습니
다.
그렇다면 죽음 이후의 세상과 부활한 인간의 모습을 믿는 것이 허황된 상상에 불과할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요한이 묵시록에서 말한 수많은 상징들은 원수인 사탄을 이겨 내고 하느님의 영광을 알려 주는 예수님의 십자가 승리를 말해 줍니다. 우리는 표징을 통하여 실체를 바라보기에 표징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만 현실을 이해하고 확신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악과 모순의 표징들 속에서도 하느님의 선과 자비가 승리하고 있음을 체험한 사람입니다. 부활은 죽음이 더 이상 우리를 괴롭히는 두려움이 아니며, 세상의 악과 사탄이 결코 하느님의 자비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때에 우리는 산 이들의 하느님의 얼굴을 맞대고 보게 될 것입니다. 살아서 하늘 나라를 맛보는 일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