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祝祭
-편지
정현종
계절이 바뀌고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生의 機微를
안다면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말이 機微지, 그게
얼마나 큰 것입니까.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
을 만나면 나는 당신에게 色쓰겠습니다. 色卽是空
空是, 色空之間 우리 인생, 말이 색이고 말이 공이지
그것의 實物感은 얼마나 기막힌 것입니까. 당신에게
色쓰겠습니다. 당신한테 空쓰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편지란 우리의 感精結社 입니다. 비밀통로입니다.
당신에게 편지를 씁니다.
識者처럼 생긴 불덩어리 공중에 타오르고 있다.
시민처럼 생긴 눈물 덩어리 공중에 타오르고 있다.
불덩어리 눈물에 젓고 눈물덩어리 불타
불과 눈물은 서로 스며서 우리나라 사람모양의 피가 되어
캄캄한 밤 공중에 솟아 오른다.
한 시대는 가고 또 한 시대가 오도다, 라는 코러스가
이따금 침묵을 감싸고 있을 뿐이다.
나는 感禁된 말로 편지를 쓰고 싶어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감금된 말은 그 말이 지시하는 현상이 감금되어 있음을
의미하지만, 그러나 나는 감금 될 수 없는 말로 편지를
쓰고 싶습니다. 영원히, 나는 祝祭主義者입니다. 그중에 고통
의 축제가 가장 찬란합니다, 합창 소리 들립니다. "우리는
행복하다"(까뮈)고. 生의 기미를 아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안녕.
***
시인 정현종님은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현재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입니다.
(수년 전, 노스캐롤라이나에 거주하던 지인이 보내준 e-메일.
로키산맥 고산대 능선에는 '무릎을 꿇고 자라는 나무'가 있다고.
해발 3,000~4,000m 식물한계선에서 자라는 침엽수로, 혹한을 견디기 위한
나무의 생존방법이랍니다.
굽고 뒤틀리고 느리게 자란 나무로 만든 현악기는
공명(共鳴), 울림이 아름다워서
연주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최고가의 악기랍니다.
이렇듯, 지금 당면한 고통 또한 은총이라 생각하며 견디라며
위로해 주시던 송영달 박사님. 위암으로 투병중이셨습니다.
지난 해에는 소장하신 모든 책을
한국 중앙국립 도서관에 배편으로 보냈다 하셨는데
지금은 연락이 안됩니다. e 메일은 열리는데 답은 없습니다.
시를 옮기면서 박사님의 '안녕'을 우리 주,성모님께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