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대표하는 지성이라고 불리던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스스로 무신론자라고 자처하던 그가, 75세에 ‘세례’라는 것을 통해 영성의 세계에 들어선 것은, 가히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 일이었다. 큰 날개를 퍼덕이며 가장 높이까지 오른 독수리의 기상을 연상케 하던 그가, 자기의 날갯짓을 멈추고 겸손의 모습으로 활강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자기 희생’이라는 극적인 경험이 없이는 절대로 영성을 얻을 수 없다고 말한다. 빛뿐 아니라 어둠까지 알아야, 인간 한계를 초월하여 영성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최근 외동딸의 암 투병과 실명, 그리고 사랑하는 손자의 중증자폐에 아버지로서, 할아버지로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절망을, 실제로 깊이 통감했다.
눈물의 간구로 그가 비로소 깨달은 것은, 바로 하느님에게서 오는 초월의 힘이요 영성의 힘이라는 것이었다. 딸을 통해 많은 기적을 보았지만, 그는 다시 죽을 수밖에 없는 육체가 치유되는 기적보다 더 큰 기적은, /자신이 영원한 생명인 하느님의 사랑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깊고 커다란 하느님 사랑을 깨닫는데, 돌고 돌아 무려 60년이란 세월이 지나고 난 이후였다. 성 김 대건 신부님은, 어린 십 대에 그 사랑을 깨닫고, 마카오 유학의 길을 떠났던 것이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인 역시, 영성에 목말랐다 할 수 있다. 우리도 사라져 지나가는 것보다 영원한 것에, 더욱 몰입하는 은총을 간청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