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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엔 본당의 어느 단체원들에게 야단을 쳤더니 그들이 모두 잠수하고 말았습니다. 그 불똥이 그들의 자녀에게 까지 튀었습니다. 그 분들 중에 한 부모가 자기 자녀를 복사단에서 탈퇴하게 만든 겁니다. 그 아이는 원래 붙임성 있는 아이였는데 그 후 나를 보더니만 황급히 고개를 돌리고 딴청을 피웁니다. 다가가서 얘기를 건넸더니 엉뚱한 말을 하며 당황해 하는 눈치였습니다.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도대체 부모가 무슨 말을 했기에 이런가싶었습니다. ‘아니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인가.’ 난 못된 고약한 사목자가 되었습니다.
사목은 어버이 마음으로 돌보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꽤 그럴듯한 언급입니다. 제 나이도 나이인 만큼 이제 어버이가 되어야 한다는 거죠. 그러나 사목이 그처럼 생각과 말만으로 되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최근에도 본당의 사목회장에게 심한 말을 해서 상처를 주고 말았습니다. 아주 순한 분인데 화가 나니 무섭습니다. 여러 번 만나서 용서를 빌고 했지만 요지부동입니다. 지금도 맘을 돌리지 않습니다. 이제 와서 내가 의도하지 않았고 고의성이 없었다고 발뺌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사목자로서 칭찬을 많이 받은 편입니다. 나이를 먹고 연륜이 쌓여 가면서 여유가 생기고 넉넉해져야 되는데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아집이 강해졌나 봅니다. 어떤 사안의 옳고 그름을 떠나 억압적이고 극단적인 표현이 문제입니다. 제 딴에는 집안에서도 가족끼리 다투고 또 화해하는 것이 다반사인데 뭘 그러느냐하지만 그건 젊었을 때의 얘기인 것 같습니다.
바오로사도의 사랑의 송가(1코린도 13장)에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가 뼈아프게 와 닿습니다. 교우들을 사랑한다면 그들에게 뭔가를 가르쳐 어떤 변화나 성과를 내려하기 전에 기다려야 됩니다. 그동안 많이 기다렸고 이제는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을까요. 하여튼 성급한 마음이 문제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을 얘기해도 억지로 강요하면 그 순간 독이 되고 맙니다. 업적이나 성과보다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고 그런 사목을 한다고 했지만 실은 그것은 말뿐입니다. 남의 탓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실은 나의 사랑과 인내 부족임을 깨닫습니다.
이번 일로 상당히 당혹스럽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심한 생각이 절로 들지만 어쩌겠습니까. 그것이 내 모습인 것을. 마음을 아프게 한 분들에게 다시 한 번 용서를 청하며 저 개인적으로는 성숙의 기회로 삼고 싶습니다. 아픈 만큼 성숙해져야겠다 싶습니다. 공자님은 나이 육십을 이순(耳順)의 나이라고 했습니다. 육십의 나이에는 남이 어떤 말을 하더라도 날카롭게 반응을 보이지 않고 순하고 선하게 들을 수 있어야 된다는 의미로 들립니다. 이제 그런 나이가 되었습니다. 사랑 가득한 인내의 모범으로 봉사하라는 말이 생각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