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교황인
요한 23세(1881∼1963)와 요한 바오로 2세(1920∼2005)가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성인으로 추대됐다. 교황 2명이 동시에 성인 반열에 오르기는 가톨릭 교회사상 처음이다.
이들을 성인으로 선언하는 시성식(諡聖式)은 제2 부활주일인 27일 오전 10시(현지 시간) 로마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주례로 열렸다.
로마는 시성식 전부터 축제 분위기였다. 두 교황의 얼굴이 여러 가지 색실로 그려진 직물이 여기저기 내걸렸고, 밤새 기도할 수 있도록 모든 성당이 전날 저녁부터 개방됐다.
시성식은 성 베드로 광장에 설치된 대형 화면 19개로 생중계됐다. 요한 바오로 2세의 기도로 치유된 여성 2명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는 세계 24개국 정상을 비롯해 54개국에서 대표단이 참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나라에서는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이 참석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날 바티칸을 방문한 아르세니 야체뉵 우크라이나 총리에게 만년필을 선물하며 "이 펜으로 평화를 써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야체뉵 총리는 우크라이나 사태가 긴박하게 돌아가자 시성식 참관을 포기하고 급거 귀국했다.
시성은 가톨릭에서 순교했거나 성덕이 높은 고인을 교황이 성인으로 선포하는 것이다. 이렇게 공인된 성인은 가톨릭 예배인 미사의 의미와 의례를 담은 미사경본과 시간전례(매일 정해진 시간에 하는 기도·성무일도) 기도문에 이름이 들어간다. 교회의 기념일을 수록한 전례력에는 그를 위한 축일이 만들어진다.
요한 23세의 축일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개막일이었던 10월 11일, 요한 바오로 2세의 축일은 교황 즉위일이었던 10월 22일이다.
가톨릭 사상 가장 사랑받는 교황으로 꼽히는 이들은 명문가나 재력가 집안이 아닌 빈곤층 출신이다. 요한 23세는 이탈리아 북부 시골 마을에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사제품을 받은 뒤인 1차 세계대전 때 징집돼 전쟁을 겪었다. 2차 세계대전 때는 교황청 외교관으로 일하며 유대인의 희생을 막으려고 노력했다고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는 설명했다. 냉전시기 미국과 소련을 중재했고 종교 간 대화에도 힘썼다. 교계에선 교황 중심의 경직된 제도를 완화했고 신자들에겐 소박하고 유쾌한 성품으로 사랑받으며 '착한 교황'으로 불렸다. 1962년에는 교황 최초로 미국 시사잡지 타임에 올해의 인물로 선정됐다.
요한 바오로 2세는 폴란드의 공장 도시에서 성장했다. 8세 때 어머니를 잃고 군인 아버지 손에 자랐다. 나치 점령기에 비밀리에 운영되던 지하 신학교에 들어가 46년 사제품을 받았다.
고 김수환 추기경은 요한 바오로 2세 선종 직후 추모 미사에서 "당신이 나치 독일과 소련 치하에서 고통을 받았기 때문에 분단된 한국의 아픔을 당신의 고통처럼 느꼈다"고 회고한 바 있다.
강창욱 김나래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