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바티칸공의회 개막 50주년이 된 지난해 10월 11일부터 올해 연중 마지막 주일인 11월 24일
‘그리스도왕 대축일’까지 우리는 ‘신앙의 해’를 살고 있습니다.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순간의 이익
을 위해 상식의 벽을 허물어 버리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불량한 양심이 마구 횡행하는 이 세상을 살아가기에는 신앙심이 너무 얇지는 않은지 걱정됩니다. 그래서 교회는 ‘신앙의 기초체력 강화’를 위해 ‘가톨릭 교회 교리서’를 깊이 연구하고 신앙생활의 원천으로 삼을 것을 강력히 권고하였
습니다. 우리 본당에서는 소공동체와 교육 등을 통하여 공의회의 문헌을 공부하고 평신도 역할의
중요성에 대해 1년 내내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강조하였습니다.
이 신앙의 해가 꼭 1주일 후에는 막을 내립니다.
그러나 어버이의 공경이 어버이날 하루만 공경하라는 것이 아닌 것처럼, 성탄절 하루만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라는 것이 아니듯이, 평신도의 권리와 의무도 신앙생활 전체를 통하여 실천하고
신앙의 해에 주어진 과제의 실현으로 지속가능한 신앙의 밑바탕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3. 평화를 위한 기도와 형제애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미사 때마다 ‘평화의 인사’를 주고받습니
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20,19)라고 말씀해주신 것도 알고
있습니다.
참으로 “인간 생명의 존중과 증진에는 평화가 필요”합니다.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것만도
아니고, 적대 세력들 사이의 균형을 보장하는 데 그치는 것도 아닙니다.”(제2차 바티칸 공의회 「사목헌장-기쁨과 희망」 78참조).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참된 평화를 이뤄나가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선한 이익을 보호하고 사람들
사이의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있어야 하며, 사람들과 민족의 존엄성을 소중히 여기는 가운데 형제
애의 끊임없는 실천이 따라야 합니다(이상 「가톨릭교회 교리서」 2304 참조).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새해 제47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문에서 “형제애는 평화의 바탕이며
통로”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우아하게 차 한 잔 마시며 고담준론이 오고갈 때에도, 우리가 맛있는 음식을 형제와 이웃과
함께 즐길 때에도 세상 어디에서는 헐벗고 굶주리며 작고 값싼 그 흔한 알약 하나 없어 질병에 죽어가는 어린이가 우리나라 사람 수 만큼 있다는 것이 과연 선진문명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교황님은 “지금도 세계는 수많은 사람이 노예상태와 굶주림에서 벗어나려고 도망쳐야 하는 사실에
무관심하다”고 한탄하시며 “얼마나 더 이런 사람들이 죽는 것을 보는 고통을 겪어야 하느냐”고 반
문하십니다.
4. 공동선을 향한 노력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요즘 생각이 다르고 믿음이 다르고 신앙이 다르다고 배척하고 탄압하여 제거해 버리려는
일들을 각종 미디어를 통하여 자주 보게 됩니다. 어쩌면 바로 옆에서도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르겠
습니다. 전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나라 일들이 국민의 허락도 받지 않고 일부 기득권층의 불순
한 욕심을 채우기 위해 마구 행해지고 있습니다. 공무원들을 무단으로 개인용역처럼 이용하는
작금의 일들을 보면 내가 하면 로맨스요 네가 하면 불륜이라는 잣대로 수없이 많은 뻔뻔한 일들을
자행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불의가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는 세상인지 의심이 갑니다.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이런 모습이 어떻게 비치겠습니까? 하지만
가지고 가지고 또 가지려고 하는 자들의 횡포에도 불구하고 우리 신앙인들은 자녀들에게 옳고
그름을 제대로 가르쳐주고 몸소 실천하여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 정의로운 가치관을 심어 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마음은 가난하고 나눔은 풍성한 훈훈함이 세상을 물들여 모두가 함께 살아
갈 수 있는 공동선이 실현되는 아버지의 나라를 만듭시다.
5. 그리스도와 함께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지난 3월 14일 교황으로서 처음 집전한 미사에서 ‘걷기(walking), 짓기
(building), 신앙고백(professing)’을 교회의 세 가지 임무로 제시하고 영적 쇄신을 통한 교회 재건
을 역설하셨습니다. “우리가 걷지 않으면 멈추고, 반석 위에 집을 짓지 않으면 어린아이가 해변에
지은 모래성처럼 모든 것이 무너지게 된다.”고 지적하신 교황께서는 “십자가 없이 걷고, 십자가
없이 무언가를 짓고, 십자가 없이 예수님의 이름을 부른다면 우리는 주 예수님의 제자가 아닌
세속적인 존재일 뿐”이라고 강조하십니다. 교황님은 그 후로도 기회 있을 때마다 ‘돈’이라는 우상
에 현혹되지 말 것을 우리에게 당부하십니다.
저는 최근에 다시 한번 읽으면서 가슴에 비수로 꽂혔던 복음 한 구절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공동번역 성경의 구절이 더 마음에 다가와서 혼자 성경을 읽을 때에는
공동번역본을 이용합니다.
그 성경에 있는 요한복음 13장 12절의 구절입니다.
최후의 만찬 직전에 제자들의 발을 일일이 닦아주신 예수님께서 자리에 앉으신 다음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내가 왜 지금 너희의 발을 씻어 주었는지 알겠느냐?”
저에게는 이렇게 들립니다.
“내가 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는지 알겠느냐?”
“내가 왜 광야에서 그 고생을 했는지 알겠느냐?”
“내가 왜 십자가의 고통을 스스로 짊어진지를 알겠느냐?”
“내가 왜 매일 매일 내 몸을 갈기갈기 찢어 너희에게 주는지 알겠느냐?”
“내가 왜 내 평화를 너희에게 주는지 알겠느냐?”
참고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어떻게 기도하시는지 알고 싶으시다면
요한복음 17장을 권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