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창세기에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 …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창세 1,26-27). 여기에 인간의 위대함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된 인간은 항상 자신 안에 삼위일체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제1독서에서 모세가 하느님에게 청하듯,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사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늘 우리를 동행하시는 하느님, 그분은 사랑이라고 요한 사도는 고백합니다(1요한 4,8). 사랑이신 하느님의 모습을 우리 안에 지니고 있다는 것은, 또 사랑이신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인생 여정을 걸어가신다는 것은, 우리 역시 사랑하며 살아가야함을 의미합니다. 때문에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사랑으로 가득 찬 이는, 하느님으로 가득 찬 것이다”라고 말합니다(시편 상해 98,4). 이러한 의미에서 삼위일체의 신비는, 그리스도인의 믿음과 삶에 핵심적인 사랑의 신비입니다.
요한복음 저자는 당신 아들을 선물로 주시는 은총 속에서,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이 구체적으로 표명되었음을 가르쳐 줍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 주셨습니다.”(요한 3, 16).
하느님께서 당신 외아들을 우리에게 보내 주신 이유가, 바로 당신의 넘치는 사랑에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보내 주심으로써 우리를 어떻게, 어디까지 사랑하고 계시는지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외아들을 통해 우리 모두를 당신의 사랑에 참여하게 해 주셨습니다. 나아가 우리에게 몸소 보여 주신 사랑을 본받아, 우리가 서로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십니다.
이런 의미에서 삼위일체 하느님의 신비는 한 마디로 사랑의 신비라 할 수 있습니다. 비천하기 그지없는 우리를 위대한 하느님 사랑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에게, 하느님께서 요망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단지, 하느님 당신께서 사랑의 선물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고자 하신다는 것을, 곧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굳게 믿어달라는 것뿐입니다.
당신 외아들을 통하여, 이렇듯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더할 나위 없는 선물을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 외아들까지 주실 정도로 최고의 선물을 다 주셨고, 이제 남은 것은 인간의 전인적인 응답뿐입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의 신비는 이성적 논리로써가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우리의 실천적인 응답을 통해서, 그 심오한 의미가 표현되는 것입니다.
또한 사도 바오로가 고백하듯, 우리는 성령을 통해서 하느님을“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로마 8,15-16). 그렇기에 우리는 세례성사를 받는 순간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안에 살도록, 즉 성부의 사랑과 성자의 은총, 성령의 친교를 누리도록 부름을 받습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받는 세례의 은총으로 우리는, 이 세상에서부터 영원한 빛 안에서, 복되신 성삼위의 생명에 참여하도록 부름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이 삶은 사랑과 평화의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삶입니다(2코린 13,11). 그래서 영원한 생명을 향해 나아가도록, 그리고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 완전한 일치를 이루도록 우리를 이끌고 가는 삶인 것입니다.
이러한 삼위일체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우리 신앙인들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이라는 성호경을 통해, 하루에도 몇 번씩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우리 인생 여정에 함께하시는 하느님께 대한 신앙 고백은, 진정 우리의 삶을 그분께로 이끌어 줍니다. 말이든 행동이든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이, 그분께 찬미와 영광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떠한 역경 앞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용기와 힘을 갖고, 계속해서 하느님을 생각하도록 만들어 줍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성삼위의 복자 엘리사벳과 함께 다음과 같이 노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지극히 흠숭하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마치 제 영혼이 이미 영원한 삶 안에 머무는 것처럼, 당신 안에 자리하도록 도와주십시오. 그 어떤 것도 제가 느끼는 평화를 깨트리거나, 당신에게서 벗어나지 않게 해 주소서. 매순간 당신 성스러운 신비의 심연에 보다 깊이 들어가도록 이끌어 주소서. 제 영혼으로 하여금 더욱 평온하게 하시어, 당신의 하늘이 되도록, 당신이 사랑하는 거주지가 되도록, 그리고 당신이 쉬고 머무시는 장소가 되도록, 저를 변화시켜 주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빕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