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때때로 세상의 여러 잡다한 일들에 얽매여, 가장 소중하신 주님의 현존을 잊고 살았습니다. 세상 것이 전부인 양 살면서 고통을 잊으려 하였는데, 그리고 하느님을 떠나 세상의 방종 속에 파묻혀 살려고 몸부림쳤는데, 놀랍게도 그러면 그럴수록 마음 한 편의 공허감을 떨쳐내지 못하고, 늘 비어있는 공허함에서 오는 외로움을 어쩔 수 없이 견디었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떠난 가련한 자녀들에게 또다시 기쁨의 성령을 약속하십니다. 그 성령께서는 진리의 영이시며, 진리의 영께서 우리 곁에 머무를 때 비로소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요한 8, 32)하시며, 참된 진리의 자유 안에 우리를 이끄시고 초대하십니다.
끝내 죄 많은 인간을 내치지 않으시는 지극히 애절한 하느님의 사랑을, 우리는 같은 성령의 약속 안에서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성령께서는 하느님 인간 사랑의 결정체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이러한 성령께서 우리에게 오시는 성령강림 대축일입니다.
우리가 결손 또는 조손 가정의 아이들이나 혹은 부모님들이 멀리 떠나있는 아이들을 볼 때, 고아원 친구들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정말 그들은 얼마나 고독해 하였을까? 얼마나 많이, 자신들을 버리거나 잃어버린 부모님을 그리워하였을까? 그러니까 그들에게는 아침에 눈을 뜨면, 이 세상 어디에도 의지하거나 믿을 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어린 나이에,‘이 넓은 세상에 나 혼자뿐이다’라는 처절한 고독감이, 떨칠 수 없이 밀려온다는 것입니다.
감히 비교가 될 수는 없겠지만, 명절 때든, 대축일 미사가 끝나고 그 많던 교우들이 일순간 사라져 버리고, 텅 빈 성당에 홀로 있게 될 때, 저도 가끔은 고아가 된 심정을, 만분의 일 정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이를 때에는 고독을 견디지 못하고, 자주 동창이나 신자들을 부를 때가 많았고, 기도가 아닌 세상적인 일로 혼자임을 잊을 때도 많았습니다.
양로원의 어르신들이 견뎌야 하는 가장 큰 고통은, 외로움이며 고독이라고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미움보다 더 큰 죄는 무관심이라는 말도, 외로움이 주는 쓰라림의 또 다른 표현일 것입니다. 인간이 홀로 무인도에 버려져 잊혀진 존재처럼 되어, 무서운 고독에 허우적 거리게 될 수도 있을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시겠다는, 예수님의 인간을 향한 사랑의 열망은, 성령의 약속으로 현실이 됩니다.
“나는 너희를 고아로 버려두지 않고, 너희에게 다시 오겠다”(요한 14, 18)
예수님의 이 같은 희망의 약속 덕분에, 우리는 어둔 밤길에서도, 폭풍이 몰아치는 바닷가에서도, 아무도 내 곁에 없는 홀로인 방에서도, 혼자가 아님을 느끼며 삶에 용기와 위안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가끔은 우리가 이와 같은 주님의 약속에 위로 받지 못하고 휘청거릴 때, 주님께서는 희망을 잃을까 또다시 강조하여 말씀하십니다. “내가 아버지께 청하면, 아버지께서는 다른 보호자를 너희에게 보내시어, 영원히 너희와 함께 있도록 하실 것이다”.
이러한 사랑의 성령께서는 진정 우리 곁을 떠나지 않으시는 우리의 협조자이며 보호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에게는, 인간의 의지를 뛰어 넘어 주님과 살아가는 비범한 차원의 삶이 가능하게 됩니다. 이와 같은 진리의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 주시겠다는 약속을, 오늘 예수님께서 실천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따금씩 누군가에 대한 미움으로 괴로울 때, 앙갚음하고 싶을 때, 또 친구나 남편, 아내, 직장 동료의 배신으로 불신과 미움이 가득 차 있을 때라든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됩니다. 이럴 때 사랑과 진리의 성령께 기도해야 합니다. 나의 의지와 감정을 넘어서는 지혜와 힘을 달라고 끊임없이 간청해야 합니다.
성령은 우리 인간의 의지와 욕구를 넘어서서, 세상이 줄 수 없고 인간이 찾을 수 없는 지혜와 은총을, 우리에게 주시는 분이십니다. 성령의 열매로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자비, 선행, /성실, 온유, 절제 등이 맺습니다. 지금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성령의 은총 속에 자신의 삶을 의탁하며, 새로운 차원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진리의 성령이 오시기를 기도하며, 나의 의지나 지식이 아닌, 성령의 이끄심이 내 삶을 끌어가시기를, 기도하는 한 주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바로 그 때,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가 우리 삶에 깃들여 지고, 우리는 현존하시는 주님을 체험할 수 있는 은총을, 받게 될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