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아버지 하느님께 성령을 청하시겠다는 모습을 전해 줍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고아들처럼 버려두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또한 그분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으로 살아가야 할 우리가, 우리 멋대로 살아가도록 내버려 두지도 않으십니다. 그분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다시 오십니다.’ 그런데 그 성령께서는 ‘우리 곁에서’가 아니라 ‘우리 안에’ 머무십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우리 가운데, 우리 안에 살아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인하여, 그분께서 명하신 계명들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분의 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다름 아니라 우리에게 베푸시는 하느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응답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께서는 모든 믿는 이들이, 주님의 계명을 지킴으로써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고 그래서 활기차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그래서 사람은 주님을 믿게 되면서,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것에 더욱 관심과 애착을 가지게 됩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체험한 사도들뿐 아니라, 예수님을 만난 모든 사람들은 그동안 자신들이 중요하게 여겨온 것을 버리고, 예수님이 제시한 삶의 새로운 가치관을 갖게 됩니다. 우리도 이와 같은 비슷한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될 때, 일상을 살아가면서 나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을 한번 차례로 적어봅시다. 무엇부터 적을까요? 예를 들어 하느님, 사랑, 믿음, 재물, 건강, 지식, 권력, 명예, 친구, 향락 등등......... 그리고 하루 뒤에 중요하지 않은 것을 하나 둘씩 지워봅시다. 그러면 무엇이 남을까요? 보통은 마지막으로 복음적인 가치만이 남게 됩니다. 사도들은 다른 이들에게도 이러한 복음적 삶의 가치관을 선택하도록 주님 말씀을 전했습니다.
오늘 제1독서 사도행전에 나오는 필리포스 부제는 사마리아의 고을로 내려가 그 곳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선포합니다. 그의 메시지는 치유와 악령추방으로 인해 더욱더 온 마을에 큰 기쁨이 넘치게 합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인 그들에게 안수를 하여 마침내 성령까지 받을 수 있게 합니다.
성령은 이미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전 약속하신 진리의 영으로 우리의 보호자이십니다. 영원히 함께 하기 위한, 부활하신 주님의 가장 큰 선물이 성령입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 머묾으로써, 주님이신 당신을 인식할 수 있게 하십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예수님 안에, 예수님은 아버지 안에 계시는 성삼위의 사랑의 관계 안에서 이루어진 삼위일체를 깨닫게 합니다.
성삼위에 대한 이 같은 깨달음은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하는, 부활하신 주님의 사랑 안에서 더욱더 구체적으로 심오하게 됩니다. 우리가 교회와 함께 머무르시는 성령 안에 살아있음과 그 깨달음은,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는 가운데 더욱더 확실해집니다. 일상생활 안에서 사소한 일에서부터 사랑의 삶을 실천하려 노력한다면, 바로 성삼위와 함께 생을 살아가는 것이 됩니다. 이는 성삼위 하느님이 바로 사랑이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간혹 의문을 품을지 모릅니다. 정말 그럴까?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렇게 신심이 흔들릴 수도 있습니다. 신앙은 우리 지성의 영역을 넘어 선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지만, 많은 경우 우리의 머리와 이성으로 깨닫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살아 있을 때부터 성인이라고 불렸던 마더 데레사 조차 당신의 말년에“정말, 하느님이 계실까?”라는 의심이 엄습해 와서, 스스로 몸서리 쳤다고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평생 그렇게 하느님 체험을 많이 한 성녀였지만, 몸이 노쇠하니까, 신심마저 약해졌던 것을 힘들어 했습니다. 이러한 의혹은 다른 성인들 역시 체험한 적이 있다고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믿음이 강한 사람에게는 그 만큼 큰 의혹과 유혹이 생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사제들이 겪고 극복해야 하는 의심의 십자가는, 일반 신자들이 지고 가는 십자가와 분명 다른 것이며, 주교님이나 교황님께서 짊어지고 가야 하는 고뇌의 십자가 역시, 우리 일반 사제들의 십자가와 또 다른 것입니다.
이처럼 각자에게 주어진 신앙의 다양한 장애물을,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극복하고 이겨내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 사도 베드로는 자신의 체험담을 통해서 우리가 믿어야 할 그리스도를 강조합니다.“여러분의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거룩히 모십시오.” (1베드 3, 15)
우리가 알다시피 베드로는 물위를 걸어오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굳센 믿음을 지니지 못했기에 물에 빠졌는가 하면, 더욱이 예수님의 죽음 앞에서는 비겁하게 세 번씩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했던 사람입니다. 우리 역시 사도 베드로처럼 연약한 신앙의 굴레에 넘어져, 절망의 나락에 떨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우울하고 절망에 빠진 모습 속에서도 희망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힘들고 어려울수록 희망을 놓지 말고 다시 주님께로 돌아와, 주님께 의탁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 죄와 과오가 아무리 많이 있다하여도, 주님 안에서 해결책을 찾으려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 역시 자신의 결점이 많다 하여도,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어 주시는 사랑과 자비가, 베드로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깊고 높고 넓음을, 베드로는 체험하고 기억하였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주님의 크신 사랑과 자비를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의 사랑이 나를, 우리 모두를 위해서 참으로 진실되며 그 자비는 끝이 없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인 사마리아인처럼, 우리도 마음의 문을 열고 주님을 온전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나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다름 아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신앙 선조들이 목숨조차 초개같이 버리고 선택하였던 것이, 바로 신앙이었습니다. 선조들의 신앙, 그만큼은 아니라 하여도, 우리도 신앙 안에서 일신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곧 오시는 성령을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우리 마음을 잘 가꾸고 준비하여 성령과 함께, 우리 남은 생애를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