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이 주님과 함께 있을 때는 마치 철부지 어린애와 같았습니다. 스승의 뜻이 무엇인지를 끝까지 몰랐고 또한 구원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도 모르는 천덕꾸러기들이었습니다. 그저 세속적인 야심만 가지고 눈치만 보는 소인들이었습니다.
이러한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여러 가지 말씀을 하시면서 특히 믿음을 강조하셨습니다.
"너희는 걱정하지 말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요한14,1). 그리고 나중에는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16,33)라고도 하셨습니다. 예수님만 믿으면 걱정할 것이 없고, 세상의 어떤 세력도 이길 수 있다는 것이 그분의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진실입니다.
사람이 살 수 있는 길은 주님께 대한 믿음밖에 없습니다. 세상에 길이 많아도 안전하게 걸어갈 수 있는 길은 예수님의 길뿐이고, 세상에 가르침이 많아도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진리는 예수님의 가르침뿐이며, 세상에 생명이 많아도 썩지 않는 생명은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을 믿는 것이, 최고의 삶의 지혜이며 또한 모든 근심 걱정을 이겨내는 길입니다.
물론 사람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습니다. 미래가 활짝 열려져 있지만, 그 전개될 내용은 캄캄하게 비밀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겁도 나고 두렵습니다. 그러나 믿는 이들에겐 하느님이 계시기 때문에 문제 되지 않습니다. 자녀가 아빠와 함께 있는데, 미래의 무엇이 문제가 되겠습니까. 그분 뜻만 따르면 세상에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가 믿는 것은, 실상 주님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믿고 있습니다. 어제와 작년에도 내가 그랬으니까, 오늘 이번에도 괜찮겠지 하며, 자신에게만 의지하려 합니다. 그러나 스스로 자신이 유한하고 부족한 피조물인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 그 부족한 자신만을 믿고 산다는 것이, 살얼음판을 걷는 것과 같이 늘 불안합니다.
베드로는 오늘 2독서에서 좋은 말을 했습니다. "주님께로 가까이 오십시오. 그분은 살아 있는 돌입니다." 예수님이 일찍이 베드로를 반석이라 부르시면서 그 위에 당신의 교회를 세우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의 핵심은 “어떻게 하느님께 나아갈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응답이며, 간절한 호소이고 하나의 초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질문에 예수님은 아주 친절하게도 다음과 같은 답안을 제시해 주십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 14,6).
요즘은 네비게이션이라는 물건이 나와서 우리가 길을 잘 모르더라도 원하는 장소에 척척 데려다 주지만, 이정표와 가고자하는 목적지에 대한 예비지식이 전혀 없으면, 낭패를 보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이처럼 인생이라는 나그네 길에서 먼저 그 길을 걸어갔던 선구자 또는 인도자의 뒤를 따라야 후회할 일을 줄일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예외 없이 다음의 세 가지 길 중에 하나를 선택하여 걷게 됩니다.
첫째는 자신이 현재 걷고 있는 길
둘째는 자신이 걷고 싶은 길
셋째는 가고 싶지 않지만 가야만 하는 길입니다.
현재 자신이 걷고 있는 길과, 자신이 걷고 싶은 길이, /일치하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까요? 그러나 살다보면 그렇지 못한 경우가 훨씬 많기에, 인생이 더욱 힘들고 고통스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가야할 길이 고통스럽고 어렵고 힘들고 먼 길이라 하여도, /그것이 내가 가야만 하는 길이라면, 망설임 없이 가야 하지 않을까요? 어렵고 힘들게 느껴지는 길이지만, 주님께서 불러 주셨기에, 다만 우리는“예”라고 응답하고 서로 격려하면서 그 길을 가야 할 것입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보다 먼저 그 길을 훌륭하게 걸어가신 많은 선배 신앙인들이 계시고, /지금 그 길에 나 혼자만이 아니라, 함께 동참하여 친교를 나누고 있는, 형제·자매들이 곁에 있기에, 우리는 덜 외롭다 하겠습니다.
하느님 섭리는 오묘하기만 합니다. "내가 이 나이에 변해봐야 얼마나 변하겠어?" 하는, 우리 비천한 삶에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하느님은, 어느새 미풍처럼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그래서 우연히 발견한 상본 한 장, 거기에 적힌, 별 의미 없어 보이는 성서 한 구절이, 또는 우연히 들은 성경 말씀이 본인도 모르게 자신의 삶을 희열에 넘치도록 바꿔놓기도 합니다.
마음이 열린 사람들, 단순하고 소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마음의 순결을 지닌 사람들은, /아주 쉽게 진리를 받아들이며, 진리 안에서 행복한 삶을 살아갑니다.
동시, 동요 분야의 탁월한 작사자께서 이런 글을 쓰신 적이 있습니다. ‘산을 오르다가 길섶에 핀 아주 작은 풀꽃, 보일락 말락한 노란 풀꽃 한 송이를 발견하였는데, 그 꽃이 너무 예쁜 나머지 땅바닥에 엎드려서 자세히 바라보았다. 가만히 바라보니 그 작은 풀꽃 안에 하느님의 섭리가 느껴지고, 그 작은 생명 안에 하느님의 이치가 들어있더라’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분은 워낙 영적으로 사시고, 또 맑은 정신과 티 없는 마음을 지니고 살아가는 수도자 같은 분이다보니, 그런 체험을 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웃 형제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의 영혼이 담긴 시선으로, 따뜻한 마음의 눈으로 이웃을 바라볼 때, 십자가위의 짐이었던 형제는 어느새 사라지고, 행복의 원천, 기쁨의 원천, 은총과 축복의 원천인 형제가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이 바로 진리를 깨달음에서 오는 결실입니다.
주님이 바로 진리요 길이요 생명이며 또한 살아 있는 반석이며 안식처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분을 믿으면 우리 또한 반석이 됩니다. 지나가며 사라져 가는, 세상 걱정 속에 인생을 낭비하지 말고, 참된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도록 합시다.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원하시는 길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너희는 걱정하지 말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으며 그 길을 걸으라’고 초대하고 계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그분은 먼저 그 길을 가셨고, 그 길이 의미 있는 길임을 입증해 보여 주셨기에, 우리는 주저하거나 걱정하지 말고 그분의 뒤를 따라야겠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참된 길이시고 진리이시며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번 한 주간 보다 단순하게 살아갈 것을 다짐해 봅니다. 어린이의 마음으로 살아가다 보면, 우리 시선이 조금씩 정화되겠지요. 인간적인 눈과 세속적인 눈을 조금씩 감게 될 때, 영적인 눈, 순수하고 맑은 눈, 신앙인의 눈, 관상가로서의 눈, 예수 그리스도의 눈을 회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화되고 성화된 눈으로 이 세상을 바라볼 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가까운 주위에서 보다 쉽게 발견할 수 있게 되리라 믿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