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살이에서 무언가 잔뜩 기대를 걸었던 것이 그야말로 물거품이 되었을 때, 또는 희망과 꿈이 좌절되었을 때 던지는 말에는 허망함이 담겨 있습니다. 인생살이의 패배를 맛본 이의 스산함이 담겨있을 수 있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바라보았던 인생의 희망이 동료의 배신에 의한 절망감으로, 예수님의 처참한 십자가 죽음으로 끝났고, 이제는 무엇을 기대할 수조차 없는 막다른 길에서 슬픈 어둠이 팽배해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두 제자들 역시, 침통한 표정으로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커다란 희망을 걸었던 예루살렘에서 패배의 쓴맛을 본 뒤, 절망 가운데 힘없이 걸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루카가 전하는 아주 감동적인 이‘엠마오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네 단계로 구분하여 묵상하면 좋겠습니다.
첫째, 실망에 겨워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와 그들과 함께 걸으시는 예수님(루카 24,13-24)
둘째,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시는 예수님(루카 24,25-27)
셋째, 제자들과 함께 묵으려고 들어가셔서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시며 떼어 나누어 주시고, 이제야 알아보게 된 그들 앞에서 사라지시는 예수님(루카 28-31)
넷째, 한마음이 되어 다시금 예루살렘 공동체로 귀환하는 두 제자(루카 24,32-33)
우리 인생에는 두 가지 내리막길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내리막으로 끝나는 내리막길이며, 다른 하나는 내리막에서 다시 올라가는 내리막길입니다.
우리도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희망과 꿈이 좌절되어 내리막길을 걸을 때가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와 엠마오의 두 제자처럼 인생에서 쓰디쓴 낙심의 내리막을 걸을 때가 있습니다. 그 길은 자포자기의 길이며, 다시 옛날처럼 고기잡이를 떠나는 길입니다. 그런 내리막은 인생도, 신앙도, 믿음도 실패로 끝나고 맙니다. 그러나 걷고 있던 내리막길에서 잘못 되었음을 빨리 인정하고 되돌아올 때, 내리막은 내리막이 아니라 다시 올라갈 수 있는 부활의 오르막길이 되는 것입니다. 좌절과 실패의 사순을 얼마나 빨리 깨닫느냐가, 부활의 기쁨의 길로 그만큼 빨리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소위 성공한 인생을 살았던 위인들이나, 신앙인들 역시, 자신들의 삶에서 단 한 번도 내리막의 좌절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합니다. 모두가 가슴 아픈 내리막길을 체험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용기 있게 찬란한 부활의 엠마오 오르막길을 향하여, 다시 힘차게 걸어 올라갔던 분들이셨습니다.
영성신학의 한 획을 그으셨던 ‘십자가의 성 요한(1542-1591)’은 신앙의 고통스러운 어두운 밤을 이렇게 노래하였습니다.
“저 밤이 날 인도했다네,
한낮의 빛보다 더 확실하게,
날 기다리는 분이 있는 곳으로
내가 잘 알고 있던 분께로,
아무도 보는 이 없는 곳으로,
이끌어준 그 쓰라린 밤이여!
그래서 새벽보다 더 다정한 밤이여!
오! 주님과 일치되게 만든 밤이여!”
십자가의 성 요한은 인간의 영혼이 하느님과 사랑으로 일치하기 위하여는, 반드시 자신의 세속적인 모든 것을 끊어 버려야 하는 정화의 과정, 곧 어둡고 좁은 암흑의 밤을 거쳐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그 길이 고통의 길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통과하기 어려워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모두 신앙의 삶에서 여러 가지로 번민하며 갈등합니다. 신앙의 길을 선택함에 있어, 주님께서 원하시는 부활의 삶을 선택하기를 주저하며 자주 어둠으로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성인 성녀들조차도 그 같은 어둔 밤을 걸었던 사실에 우리는 작은 위로와 용기를 얻습니다.
오늘 복음의 두 제자도 신앙과 믿음의 체념 속에서 피곤한 엠마오의 길을 걸어갑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주님 부활이, 진정 희망이자 복음의 기쁜 말씀이 되는 것은, //의욕을 상실하고 모든 것을 체념하며 침통한 인생길을 우리가 걸을 때, /주님께서는 모른 채 하지 않고, 우리에게 다가 오시어 우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시면서 함께 동행 하시고, 용기와 힘을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그 옛날 엠마오의 두 제자에게 그러하셨듯이 오늘 우리들의 고달픈 인생 여정에도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동행을 굳게 믿으며, 용기를 내어 함께 걸어가야 합니다. 모든 결과를 그분께 내어 맡기면서,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주 불안한 어둔 밤이 계속될 때 그분의 동행을 청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 저희와 함께 묵어 가십시오”(루카 24,29). 그럴 때 주님께서는 나와 우리 가족, 공동체의 청을 뿌리치지 않으시고, 믿음과 희망의 눈을 뜨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것이 부활의 기쁨이며, 부활의 삶인 것입니다.
복음사가 루카 자신이 직접 전해들은 이 엠마오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에게 전해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그것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과 동행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주님께 우리의 고민과 온갖 어려움과 수많은 상처들을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분은 설명과 함께 성경의 말씀을 빌려, 새로운 이해의 눈을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아직 부활한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는 제자들을 위해, 성경에 기록된 내용들을 설명해 주셨듯이, /우리의 굴곡 많은 인생사를 성경의 빛으로 해석할 수 있도록 우리의 명오도 열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 삶 역시, 인생살이가 저물어 어두워지면, 주님께 우리와 함께 머물러 달라고 초대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분은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가 초대한 곳으로 오실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가 걷고 있는 모든 인생 길에서 우리의 동반자가 되어 주시면, 그것은 참으로 축복받은 생애입니다.
엠마누엘이라는 표현도‘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입니다. 아이들은 엄마가 함께 있으면, 모든 것이 안정되지만, 엄마 없이 친절한 사람이 아무리 많이 있다 하여도, 아이는 불안하기만 합니다. 우리도 주님께서 함께 하신다면, 불안할 것이나 아쉬운 것이 아무 것도 없게 됩니다. 그러한 주님께서 우리 여정에 동행하신다는 것은, 대단히 감사롭고 은혜로운 일입니다.
엠마오에 나타나신 주님은 바로 우리 인류 역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이십니다. 당신께서 몸소,“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늘 우리 인생 여정과 동행하시는 주님이신 것입니다. 이러한 주님과 더욱 일치하면서 주님께서 기뻐하실 삶의 모습으로, 우리 여생을 가꾸어 가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