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성삼일` 이라는 비극적인 축제를 지나고 있다. 이 같은 폭풍전야 같은 분위기는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하느님이 왜 이러시나? 약한 모습, 비참한 모습을 보이는 이분이 하느님일 수 있는가? 구약을 달려오면서 그토록 강인하고 힘차던 하느님은 어디 갔단 말인가?
그것은 사랑 때문이라고 밖에는 달리 생각할 수가 없으며, 하느님의 사랑을 가장 잘 드러내는 성삼일인 것이다. 성경 전체는 사람들을 찾아 나선 하느님의 이야기이다. 하느님께서 천지창조라는 거대한 작업을 펼치신 것도 알고 보면 인간을 `모시기` 위함이었다. 200억 광년이라는 긴 시간, 이 무한하게 펼쳐진 우주의 작업장에서 피곤도 잊고 끈질기게 작업해 온 까닭은 다름 아닌 인간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겠다는 일념 때문이었다. 우주는 인간이 토라지는 일이 없도록 무진 신경을 써서 마련하신 하느님의 신방이다.
사람이야말로 그분에게는 질투의 대상이요, 까만 밤을 하얗게 새우며 신음하는 상사병의 원인이 된다. 당신 품을 떠나는 사람들을 찾고, 또 찾고 그리고도 또 찾아 헤매는 하느님이시다. 포기해야 하리라는 순간에도, “한 번만 더” 하면서 마음을 고쳐 잡는 하느님이시다. 그 장면이 성경 구석구석에서 묻어나고 있지 않은가. “아담아, 너 어디 있느냐?” 그 분의 음성이 에덴 동산에 울렸다. 그 음성에는 사랑했던 자를 잃어버린 분의 아픈 고통이 실려 있었다. “네 아우 아벨은 어디 있느냐?” 더없이 아름다운 자연을 곱게 만들어 선사하였건만, 밤낮 싸움질로 허비하는 인간의 안타까운 삶에 그 분의 애가 닳는다. “토마스야 너는 어딜 갔었느냐?” 라고 묻는 예수님의 가슴에는, 한없는 서러움이 깃들어 있다. 사람들마다에게, 민족들마다에게 묻고 실망했던 하느님이시다.
이룰 수도 없는 사랑의 꿈으로 결국 괴로워하는 것은 분명 그분의 모순이다. 그러나 사람이 없는 하느님은, 까닭 없이 공허하고 더 아플 뿐, 다른 수가 없다. 인간 때문에 고독한 분은 바로 하느님 자신이시다.
사랑은 자신을 외현화(外現化)한다고 한다. 삼위일체 교리도 인간을 향한 한 분, 하느님 삼중의 사랑고백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인간을 향한 하느님 그리움의 (수난)역사라 하겠다. 그분의 창조적 사랑은 항상 고난을 당하는 사랑이지만, 우리에게는 감사로운 모순이기만 하다. 이따금 우리는 그 사랑을 잊고 지내는 때도 많다. 혹은 생각조차 하지 않을 수도 있다. 때로는 귀찮아서, 바로 문턱에까지 온 그분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잊을 수 없다. 예수님의 현존(고난)은, 비극과 모순을 감수하면서까지, 인간을 붙잡고 사랑애기를 들려주는 하느님 화해의지의 전부이고 그 표현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유일한 애인이다. 하느님의 소망어린 꿈이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의 말씀대로, 우리 각자는 “하느님의 그리움 자체이며 그분 사랑의 목표”이다.
성경은 하느님이 결국 인간에 대한 사랑 때문에 – 인간을 닮다 못해 – 아예 인간이 되어버렸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느님도 홀로는 너무나 외로워(롭고 서러워) 견딜 수가 없었던가 보다. 그 이겨낼 수 없는 외로움으로 인해, 하늘나라로부터 가출하여 인간에게로 뛰어오는 하느님, 사람을 보고 너무 기뻐서 흙 마당을 버선발로 딛고 달려오다, 인간 죄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시는 분, 바로 예수님이시다.
사랑에 빠져 거꾸로 되어버린 분, 이성을 잃고 하늘 집을 나오시고만 그분, 그래서 하늘나라의 탕자가 된 그분은, 다름 아닌 예수님이다. 그 길밖에는 없다고 천국을 버리고 곤욕 속에 진창이 되어, 기어코 죽고 마는, 예수님의 길은, /미칠 것 같은 사랑 때문에 빚어진 하느님의 몫(운명)이었다. 보장된 낙원을 마다하고, 어쩔 수 없이 비극 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이 되고 마는 하느님, 마침내 초라한 모습으로, 누더기도 걸치지 못한 십자가상의 아들은 하느님의 잃어버린 자신이었다.
결국 그분은 당신을 다 내어주고 마는, 그 사랑을 택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복음에서, 하인들이나 하듯이 우리 발을 씻어 주는 그런 정도가 아니라, 당신 전 존재를 우리에게 내어주셨던, 그 분의 뜨거운 사랑을, 우리는 이 성스러운 밤 깊이 묵상하고 체득해야 할 것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