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노니,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듯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 34).
성목요일에 예수께서는 사랑하시던 열 두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저녁식사를 하시면서 사랑의 성체성사와 봉사직무에 헌신하도록 성품성사를 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우리 영혼의 양식으로, 생명의 빵으로 주셨습니다. 미사 때마다 우리는 성체성사를 통해 사랑과 일치를 배웁니다. 우리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구원신비인 이 성체성사에 참례하는 것은 참으로 복된 일입니다.
예수께서는 오늘 밤 지상에서 마지막으로 성찬례를 올리셨습니다.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마지막 만남과 만찬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과 몸짓 그 무엇하나라도 놓쳐서는 안됩니다. 어머니는 사랑하는 자녀를 위해 기저귀를 갈아주고 목욕을 시키는 것을 귀찮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무엇이든지 더 잘해 주고 싶어서 조급해 합니다. 예수께서도 우리 영혼을 보다 더 잘 먹이고 기르기 위하여 우리에게 당신의 몸인 성체를 내어 주십니다. 우리는 성체성사를 통해 주님의 사랑을 배우면서, 주님과의 일치를 이루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는 성체성사를 사랑과 일치의 성사라고 합니다.
아울러 우리는 성체를 모시면서 형제들과의 사랑과 일치를 이루어야 합니다. 서로 미워하고 분열되어 있으면서 성체를 모시는 것은 합당하지 못한 일입니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아 누구를 미워하는 잔상이 여전히 마음 안에 남아 있다면, 얼른 주님께 용서와 자비를 청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자신 부족한 인간이며, 실수투성이인 존재이므로 주님 앞에 늘 회개하고 참회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몸인 성체를 모시는 신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발을 씻어주신 행위는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주는 것일까요? 당시의 도시는 전혀 포장이 안 된 도로에 그들의 신발은 샌들이었기에, 길에서 묻은 먼지나 흙을 씻기 위하여, 집집마다 문 앞에 물 항아리를 마련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손님이 왔을 때에는 하인이 물그릇과 수건을 가지고 와서 손님들의 더러워진 발을 씻어주는 것이 상례였습니다. 그래서 발은 하인이 주인을, 자녀가 부모를 씻어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제자들의 모임에는 하인이 없었습니다. 즉 집안에 들어갔을 때, 종이 해야 할 일을 스승이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먼저 당신의 모습이 사랑하고 봉사하는 모습이므로, 우리도 예수님을 닮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위한 봉사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우리가 본받도록 스스로 모범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너희 스승이며 주님인 내가 너희 발을 씻어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요한 13, 14)
여기에 우리가 따라야 할 삶의 자세가 있습니다. 우리는 생활 속에서 많은 경우, 자녀들과 부모 사이에, 부부사이에, 이웃과의 관계에서 서로가 얼마나 권위와 위엄을 찾고 있는지, 또 자기를 들어 높이고자 하는 자세로 가득 차 있는지, 자기 자신을 낮추기를 얼마나 꺼려했는지, /우리 모두 예수님 앞에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인생의 많은 부분에 있어서 남 보다 우위에 서고 싶어 하는 욕구나 남에게 예속되고 싶지 않다는 사고방식이, 사물과 삶의 질서를 파괴하는 행위로 나타나기가 쉽습니다.
성목요일 예절에 참여하는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 발뿐 아니라 형제들의 아픈 마음을 씻어 주어야 합니다. 교회의 제일 중요하고 본질적인 직무가 사랑과 봉사의 직무입니다. 가정의 복음화도 세상의 복음화도 예수님처럼 겸손하게 봉사하면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세상에서의 당신 생명이 다 되었고, 당신이 당해야 할 굴욕의 시간이 다가오는 것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한 고난의 시간이 당신의 것이라는 것을 알고 계시면서도,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경우에 지위와 체면 때문에, 위신이 깎인다는 생각 때문에 진정 중요한 것은 버리고 있는지 모릅니다. 예수님의 행위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당신의 능력을 기적과 말씀을 통해서 드러내셨던 분이면서도, 수건을 두르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던 것입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었다는 이 행위가 예수님의 마음 자세를 알게 해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인간을 섬기는 봉사와 겸손의 한계선까지 내려가시는 태도를 지니셨습니다. 여기에 예수님의 참된 권위가 드러납니다.
예수님의 행위에서 놀라운 것은 당신이 하느님 아버지께 가까이 가면 갈수록, 인간을 더 가까이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자세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가 하느님께 가까이 간다고 하는 것은, /우리들 자신을 이웃으로부터 멀리 할 때가 아니라,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더 가까이 할 때인 것입니다. 하느님께로 나아가는데 우리 이웃은 참으로 중요한 이정표임을 잊지 말아야 겠습니다. 그 이웃을 따라 우리는 우리의 원형이신 하느님께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예절에 참여하면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보이시며 우리에게 서로 행하라고 하신 겸손한 봉사의 자세를 지니기로 다짐해야 하겠습니다.
특히 예수님의 수난 감실 앞에서, 삶의 의미, 고통과 죽음의 의미, 사랑과 봉사(섬김)의 의미를 깊이 묵상하면서, 죽음을 앞둔 예수님과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성체성사를 세우신 이 거룩한 밤에, 이 제대에서부터 시작하여 천상식탁에 앉을 때까지, 주님의 말씀과 생명으로 우리 모두의 남은 생애를 지켜주시고 이끌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