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영적 묵상이 될 수 있는 오늘의 복음은 선택을 강요받고 계시는 예수님께로 우리의 시선을 모아갑니다. 복음이 충분히 예수님을 전해 주고 있기 때문에, 사실 강론이 필요 없을 정도입니다. 간단히 몇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맞이하는 백성들의 환호 소리가 천지를 뒤흔듭니다. 동시에 그 시각 유대인 지도자들의 간교한 음모가 은밀하게 펼쳐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조건 없이 사랑을 베푸십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유다의 이기적인 배신의 불길이 강열하게 타오르기 시작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양립할 수 없는 선택 앞에서 고독한 순간을 사셔야만 했고, 비열하고 간교한 인간의 욕심 앞에서 당신 스스로 무력한 자가 되면서까지, 아버지 하느님과 하나 되기 위해 인내하셔야만 했습니다. 당신을 십자가 위에 처형하고 승리를 장담하던 어리석은 지도자들의 위선적인 미소 앞에서, 오히려 그들의 회개를 위해 예수님께서는 간절하게 기도하셨습니다. 그분이 죽음이라는 엄연한 현실 앞에서 오히려 얼마나 인간을 더 깊이 사랑하셨는가를, 우리는 오늘 온전하게 느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사순절을 끝맺음하기 전, 우리는 다시 한 번 사랑이 넘치고 자애가 충만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묵상하며, 그분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은총이 헛되지 않도록, 그분을 닮아가려는 노력을 다시금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 역시도 세상을 살아가면서 예수님께서 그러하셨던 것처럼, 매순간 피할 수 없는 선택을 강요받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예수님의 가르침’만이 선택의 기준점이요 중심점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이며, 그분처럼 축복 넘치는 행복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사랑하고 닮고자하면서도, 인간적인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눈앞에 보이는 이익을 쫓을 때가 많습니다. 그렇게 하고는 인간적인 나약함 때문이라고 자기변명을 하기에 급급합니다. 혹시라도 그렇게 왜곡된 삶에 이미 길들여지거나 익숙해진 것은 아닌지를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참으로 이분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마태 27, 54)라고 고백한 백인대장의 외침을 이제는 우리가 단호하게 세상을 향해 선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분명한 선택이 뒤따라야 합니다. 지금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장밋빛 현실의 유혹을 뿌리치고, 주저하거나 망설임 없이 주님을 본받는 결단을 내릴 때, 우리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축복받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