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문화사를 되돌아보면, 인간의 정신 연령이 갑자기 높아지듯이, 인류의 정신문화가 눈을 뜨며 번득이는 문예부흥기가 두 번 있었다고 합니다. 그 첫 번째 문예부흥기는 인간이 의식주(衣食住)에 안정을 얻고 난 후, 세계와 인생에 대해 사색함으로 정신문화가 꽃피는 시기인데 기원전 4-6세기로 볼 수 있습니다. 성서적으로 보면 이때에 많은 예언자들이 등장하던 시기이며, 동양에서는 석가모니와 노자, 공자, 장자가 등장한 시대입니다. 그리고 제2 문예부흥기는 16세기 이후 계몽주의에로 나아가는 시기입니다. 제1 문예부흥기에 나타난 세계도처의 예언자들과 현자들의 활동으로 인류는 영적인 성장을 하면서 예수그리스도를 맞을 준비를 한 셈입니다.
잘못하면 우리들도 미신자들처럼 예수 그리스도도 그런 여러 성현들 가운데 한 분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죽음을 넘어 부활한 유일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세기와 국가와 인종에게 받아들여진 분이시고 역사를 바꾸어 놓으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일찍이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인류역사를 가장 크게 변화시킨 세 가지 사건이 있는데, 그 첫째가 그리스도교이고 그 다음이 기계문명이며, 셋째가 공산주의라고 말한바 있습니다. 세 번째의 공산주의는 거의 1세기 가량 세계사를 역류시키다가, 이제 그 종말을 고하였습니다. 첫 번째 대변혁인 그리스도의 출현은, 인류의 역사를 그때까지와는 전혀 다른 역사로 변화시켰습니다. 그만큼 예수 그리스도는, 역사를 이끌고 변화시킨 빛 중의 참 빛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인류 역사는 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기 위한 준비의 시기였습니다.
이러한 주님을 믿고 받아들이기 위한 준비로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회개의 마음을 요청하고 계십니다. 주님을 받아들이고 모실 공간을, 사악한 욕심과 어둠이 차지하고 있다면, 주님께서 왕림하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공생활 최초의 일성으로서 회개할 것을 선언하셨습니다.
회개는 하느님과 인류를 위한 사랑을 향하여 방향을 정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우리에 대한 하느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회개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겸손하고 정직한 사랑 나눔으로서, 생명으로 나아가는 길이기에 생명의 나라로 들어가게 인도합니다.
둘째로 회개는 신앙으로 상대방을 바라보고, 감사로운 마음으로 상대방과 이웃을 받아들이도록 돕습니다. 회개를 통해 주님과의 관계뿐 아니라, 가까이 있는 이들과도 더욱 하나가 되어, 보다 돈독한 사랑을 구현하는, 아름다운 인생으로 변모하게 됩니다.
우리는 누구나 사랑을 받아야할 존재임을, 우리가 회개의 눈으로 깨닫게 될 때, 하느님은 더 한층 가까이 우리 가운데 계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병들고 허약한 우리를 치유하고 행복으로 이끌고자 하시는, 인간에 대한 세상 그 무엇도 막을 수 없는 주님 사랑을, 발견하게 됩니다.
모든 시간과 상황 안에서 하느님을 믿는 것이 회개입니다. 하느님을 믿기에 그분의 넘치는 사랑을 회개를 통해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믿음이, 회개의 바탕이며, /하느님을 보다 가까이 보다 온전히, 따르려 하는 것이 회개의 완성입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곧 바로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그분을 따랐다."
하느님을 바라보며 그분을 향해 살아간다면, 모든 것은 축복이 됩니다. 모든 것에 앞서 하느님을 향하는 회개의 거룩한 나날 되시길 두 손 모아 간구하는 바입니다.
여기서 회개에 관한 좋은 시가 있어 한 번 읊어 드리겠습니다.
해돋이
바다,
그곳에선
하루 한 번씩
뜨거운 해가 차가운 물에
제 몸을 씻고
날마다 다시 태어나는 곳이다.
나도
하루 한 번씩
그곳으로 가서
마음을 씻고
해처럼 날마다
거듭나고 싶다.
해처럼 이 내 몸을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위해
불사르고 싶다.
그리하여 떠오르는 해처럼
세상의 어둠을 밝히다가
내가 왔던 본향으로
돌아가고 싶다.
진정 회개한 그리스도인이라면, 먼저 솔선수범해서 봉사하고 희생하여 수고를 아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예수님을 진정 온 마음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언제나 예수님 말씀을 실천하려 애쓰며, 누구에게도 상처 주거나 힘들게 하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 때문에 혹시 힘들어 하거나 아파하지 않을까 염려합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보여 주는 삶을 살기에, 누구나 가까이 함께 하고 싶고, 대화라도 하고 싶은 형제 자매로 늘 남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기쁨이며, 빛 속에서 거니는 것입니다. 우리는 유혹과 시련을 겪을 때마다 실망하지 말고, 세속이 끌어당기는 모든 헛된 것을 극복하고, 예수님께 돌아서는 용기를 청하는 기도를 자주 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나를 따르라”고 거듭 말씀해 주십니다.
우리를 어두움에서 불러내어 그분의 놀라운 빛 속으로 이끌어 주신(1베드 2,9)하느님을 찬미하며, 본당 공동체 안에서 일치와 화합에 보다 관심을 갖고 배려하면서. 주님을 드러내고 보여주는 우리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노력합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