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성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새로이 오시는 아기 예수님의 사랑이 모든 이에게 풍성하게 내리시길 기도드립니다.
우리의 구세주 예수님께서는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고자 하느님 아들의 자리를 기꺼이 내어 놓으시고 사람의 아들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의 겸손함으로 구원의 은총이 내려졌다면, 우리도 그분처럼 겸손하게 삶으로써 실제로 그 은총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요즈음 우리 사회의 어렵고 각박한 현실이 심각하게 몸에 와 닿습니다. 지속되는 경제침체로 많은 이들이 일자리를 잃고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현실적인 여건이 어려울 때, 거기에서 쉽게 벗어나려는 유혹이 따르기 마련이고, 그로 인해 윤리적인 해이가 동반되기 쉽습니다. 특히 우리의 미래인 젊은이들이 그런 유혹에 흔들리는 모습은 더욱 안타깝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에게 인내와 이웃을 위한 배려가 더 필요합니다. 비록 고통 중에 있다 하더라도, 그로 인해 자신과 이웃에게 죄를 짓지 말아야 합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의로움을 잃지 않는다면, 우리를 위해 스스로 가난해지신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며, 반드시 살 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모두가 어려워하는 이런 가운데서도, 가진 것을 미소하지만 이웃과 나누는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의 아들로서 참으로 부유한 분이셨지만, 우리를 위해 가난해지셨습니다. 우리가 이웃과 나눌 수 있다면, 주님께서는 우리가 지금 누리는 은총과 행복을 더 크게 해 주실 것입니다.
하지만 거룩한 성탄을 맞이하는 오늘날, 여전히 우리는 주변에서 분열을 일으키고 갈라지는 일을 너무 많이 보고 있습니다. 엄청난 규모의 폭력과 보복, 관행처럼 계속되는 이기적이며 소모적인 싸움, 보다 많은 것을 차지하기 위해, 대화와 타협의 정신이 거침없이 무시되는 일을 자주 보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상황에 완전히 실망하지는 않습니다. 인간과의 일치와 친교를 통해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 있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닮아 창조된 인간의 가장 깊은 내면에, 하느님께서 보여주신 일치와 친교가 각인되어 있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여 갈라서는 것보다, 상대방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으며 공동의 선(善)을 모색하면, 더 많은 축복과 은혜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나아가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음을 기억하면서, 참된 일치와 친교는, 먼저 이웃의 처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에 있음을, 우리 스스로 체험하고 세상에 증거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인간이 되시는 강생의 신비는 말씀의 신비입니다.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그 말씀은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고 마귀를 쫓으며, 죄인과 병자를 용서하고 치유하셨습니다.
주님의 은총 안에 사는 그리스도인의 말, 역시 하느님의 말씀을 닮아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시듯, 우리의 말은 공동체를 건설하는 데에 쓰여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사람을 위로하고 치유하시듯, 그리스도인인 우리의 말 또한 이웃에게 힘을 빼앗는 말이 아니라, 힘을 넣어주는 말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이웃에게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전하는 일이고,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겨울의 찬바람 속에 주님의 성탄을 맞이하는 것은, 차가운 세상의 어려운 여건이지만,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뜻으로 다가옵니다. 주님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요하시지만 가난하게 사셨고, 고통 중에 있는 이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신, 주님께서 걸으신 길이 바로 우리의 길입니다. 우리는 이 길 위에서 진정으로 삶의 기쁨과 풍요로움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 자신보다 우리를 더 잘 아시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우리보다 더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의 빛 안에 머무르려는 마음을 잃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주님께서 친히 먼저 채워주실 것입니다.
연약한 갓난아기로 이 세상에 오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늘 여러분, 한 분 한 분의 삶 속에, 밝은 빛으로 늘 항구하게 머무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