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대림절이 절정에 달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탄생을 기다려 온 우리는, 이분이 다윗 가문에서 나올 것이며 그 이름이 ‘임마누엘’이라는 것을 천사의 예고를 통해서 알게 됩니다. 그분의 이름 ‘임마누엘’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라는 뜻으로, 하느님이 인간의 역사 안에 깊숙이 개입하여, 함께 하시고 모든 것을 나누신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즉 하느님이면서도 인간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분이 이 세상에 오신다는 그 자체가 이미 큰 사건이고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사건은 바로 세상의 질서 안에, 그분이 함께 하신다는 징조이며 놀라움인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언급된 이야기는 시리아와 에브라임 간의 전쟁사의 일부입니다. 다마스커스의 왕이, 아하즈가 왕으로 있는 유다 왕국을 침략하려고 계획하였습니다. 이 모든 일에 놀라서, 아하즈 왕은, 주님을 믿으라는 이사야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적국이었던 앗시리아인들의 도움을 청했습니다. 앗시리아인들은 다마스커스 왕국을 격퇴시켜 주기는 했지만, 동시에 유다를 한동안 자기들의 속국으로 삼았습니다. 유다 왕 아하즈가 이익으로 생각했던 것이, 실제로는 또 다른 재난으로 나타났으며, 무엇보다도 종교적인 관점에서, 이방인의 우상 숭배 의식이 보다 쉽게 유다 민족 안으로 침투되는 결과가 초래되었습니다.
예언자 이사야가 이러한 아하즈 왕에게, 하느님만을 믿으라고 권고하게 된 것이 바로 이때였습니다. 예언자는 강하게 다음과 같이 권고하였습니다.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결코 굳건히 서지 못하리라”(이사 7,9). 이사야 예언자는 아하즈를 야훼께 대한 믿음으로 이끌어 들이기 위해, 그에게 신적 보호의 보증으로서 어떤 징조를 청하라고 제안합니다. 그러나 아하즈는 정치적으로 계산하여, 앗시리아와의 동맹을 포기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여 거절합니다. 그러한 거절에도 불구하고 야훼 하느님께서는 여전히 징조를 보여주십니다. 그 징조는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동정녀는 바로 신약 성경의 마리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언자 이사야는 다윗 가문이 영원히 계속될 것이고, 하느님의 약속을 성취시킬 구세주이신 메시아가 왕림하여, 새로운 시대를 꽃피울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이 메시아는, 인간의 뜻과 생각을 넘어서서 오시는, ‘하느님의 선물’인 것입니다. 비록 인간이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지 않았으나, 주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또 다시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던 것입니다.
성탄의 가장 큰 신비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선물로서의 구세주, 메시아는, 결코 값싼 선물 교환으로서, 평가 절하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선물은 세상의 어떤 것과도 비교될 수 없는, 가장 고귀하고 값진 것입니다. 이것은 어둠과 죽음에 싸인 사람들을 구원하러 오시고, 삶의 광명을 주시러 오시는, 천상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선물은, 사람들에게 부담감을 주거나 갚아야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 그 자체가 인간에게 쏟아 부어져 내린 것이며, /인간에게 군림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인간을 섬기고 봉사하러 온, 오직 주는 것만을 일삼는, 사랑으로 충만된 선물입니다.
이 선물은 인간의 협력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마리아와 요셉의 협력으로 인간에게 주어졌고, 가장 보잘것없이 내려왔지만, 가장 값진 선물이 된 것입니다. 요셉의 의심을 사면서도 마련된, 마리아를 통한 이 선물은, 진정 세상의 빛을 가져와 주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몸소 사람이 되신 놀라운 은총의 신비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묵상하는 가운데, 보다 가까이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을 잘 영접할 수 있도록, 보다 성실한 마음으로 성탄을 준비해야 하겠습니다.